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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상북도 안동시] 안동 퇴계 오솔길 (녀던길)

by Leports 2023. 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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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퇴계 오솔길 (녀던길)

- 홈페이지 : http://www.tourandong.com
- 주소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도산서원길 154
경북 안동의 퇴계 오솔길(녀던길)은 솔향기 그윽한 오솔길을 지나 시원한 학소대에서 청량산을 오가던 퇴계 선생의 발자취를 만나볼 수 있는 코스이다. 퇴계 이황 선생은 이 길을 '그림 속' 이라고 했고, 자신은 '그림 속으로 들어간다'고 했다.첩첩산중 유장하게 흘러가는 낙동강 물줄기 따라서 길은 끊어질 듯 이어진다. 퇴계 이황이 거닐던 오솔길 따라 다시 걸어보는 이 길은 낙동강 상류의 비경 지대로 강 전체를 통틀어 가장 아름다우면서도 예나 다름없이 빛난다. ‘책 읽기는 산에 오르기와 마찬가지’라는 퇴계의 시처럼 도산서당에서 청량산 오산당까지 하루 종일 걸었던 퇴계의 마음 그대로, 강 따라 걷는 길은 ‘느림’과 더불어 아늑한 고향으로 향하는 듯, 번잡스러운 도시생활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평화와 행복으로 다가온다.

원래 퇴계 오솔길은 ‘퇴계 녀던길’이라 전해오는데 조선 중기의 대학자인 퇴계 이황(1501~1570)이 즐겨찾던 길이다. 1534년 문과에 급제해 벼슬길에 나아간 퇴계는 여러 관직을 거친 뒤 쉰아홉살이 되던 해(1560) 고향인 안동으로 돌아와 도산서당을 짓고 학문에 열중하는 한편 후진 양성에 힘을 기울였다. 이때 퇴계는 이웃한 봉화 청량산을 즐겨 찾았는데, 도산서당에서 낙동강 따라 청량산을 오갔던 이 길을 퇴계가 걷던 옛길이라고 해서 '퇴계 녀던길'이라고 한다.'도산9곡' 가운데 7의 단사곡, 8곡의 가송곡, 9곡의 청량곡이 몰려있는 곳으로, 청량산의 비경이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어 수많은 시인, 묵객들이 이 길을 걸어가며 글을 쓰고 시를 지은 유서 깊은 길이었다. 금강산과 버금가는 80여 편의 기행문과, 2,000여 편의 시가 남아있다.

※ 소개 정보
- 문의및안내 : 054-840-6591
- 유모차대여정보 : 없음
- 애완동물동반가능정보 : 없음
- 신용카드가능정보 : 없음




◎ 코스안내
- 내용 : - 대중교통추천코스
안동터미널-도산서원-퇴계종택-이육사문학관-농암종택-구하도-고산정-안동터미널 (도보코스 : 18.7km)

- 자가용추천코스
안동 도산서원-퇴계종택-퇴계오솔길-농암종택-고산정-광석나루-청량사-매호유원지

* 미천장담(彌川長潭)
우리말로 '매내 긴 소'이다. 강 건너 평평한 지역이'맹개'라는 지역이고, 강 우측 언덕이 삽재이며 좌측 수직 절벽이 '학소대'이다.
퇴계의 시가 있으며, 강변 너럭바위에는 시조새, 공룡 등으로 추정되는 발자국 화석이 대량으로 찍혀있다.
학소대 수직단애의 위로는 물길이 90도로 급박하게 우측으로 하회를 이루며, 병풍 같은 단애인 벽력암과 은빛 백사장이 나타나는데 여기서부터는 '가송협' 이고 이 일대 지명은 '올미재'이다.

* 경암(景巖)
경암은 과거 '백바위' 라고도 했는데, 어떤 연유로 그런 이름이 붙여진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4개의 바위가 물가에 친구처럼 붙어 있어 과연 5,6,인이 모여 즐길만하다. 퇴계는 청량산에 가던 도중 이바위에서 쉬면서 제자들을 기다리는 글을 남겼고, “경암'시에 ‘천년동안 물과 부딕쳤으나 그 모습 변함없고, 물속에 우뚝하여 아직도 늠름하다” 했다.

* 벽력암(霹靂巖)과 한속담(寒粟潭)
'벽력암'과 한속담'은 이 고장 읍지인 선성지(宣城誌)에 “벽력암 아래 깊이를 알 수 없는 소가 있음”, 이라고만 적혀있고 오가산지(吾家山誌)에, “일동(日洞 가사리)아래 두 개의 못이 있으니 '월명담'과 '한속담'이다.
그 아래 '경암'이 있는데, 위아래가 편편하여 5,6인이 앉을 만하고, 여기서 남쪽으로 '미천장담'이 구비 흐르고, 얼마나 지나면 백운동이라” 쓰여 있다.
이글을 보면 벽력암 아래 소는 '한속담'으로 추정되고, 학소대 아래 바위가 '경암'이 된다.

* 월명담(月明潭)
달빛 쏟아지는 연못 같아 선인들이 '못'이라 했다.
고요한 못 층 벽에 ‘도우단(禱雨壇)’ 이 있어서 고을수령들은 돼지를 잡아 기우제를 지냈고 이 전통은 30여 년 전까지도 주민들의 의해 이어졌다.
그 언어는 “용도용도 물 주소, 도량용도 물주소”였다. 이 말은 사물장단에 맞추어 제단 앞에서 오래도록 반복되었고, 이윽고 자정에 오면 제사를 지내고 돼지머리를 강물에 띄웠다.

* 고산과 고산정
‘고산정(孤山亭)’ 위 절벽은 ‘취벽(翠壁)’이며 맞은편 산이 ‘고산(孤山)’이고 가운데 강은 ‘도영담(倒影潭)’이라 했다.
고산정은 선조 때 명신 심희수의 시에 “그 진경은 그림이나 글로서는 묘사하기 어렵다(眞景難摹畵筆端)”의 구절처럼 절경의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정자 주인은 금란수(1530-1604)로 호가 성재(惺齎)이며 퇴계 제자이다. 부포가 고향인 성재는 이 ‘예던 길’을 따라 올라왔다가 여기에 눈길이 머물렀다.

* 농암종택
농암종택은 농암 이현보 (聾巖 李賢輔: 1467-1555) 선생이 태어나고 성장한 집이며, 직계자손들이 650여년을 대를 이어 살아오고 있는 집이다.
최초 이집을 지은 분은 영천이씨 안동 입향시조 이헌으로, 선생의 고조부이다. 종택은 2,000여 평의 대지 위에 사당, 안채, 사랑채, 별채, 문간채로 구성된 본채와 긍구당, 명농당, 등의 별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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